혼자 생각한 질문의 대답으로 오래전 본 작가 정기훈의 개인전을 떠올렸습니다. 제목은 《백발무중》. 백 발 가운데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정기훈은 현대사회의 경쟁구도와 규칙화된 시간 속에서 성실하게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의 작품 <시간은 금이다>(2015)는 작가의 사비와 제작지원비를 모아 마련한 금을 종로의 세공사의 손을 빌려 핀셋으로 집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입자가 될 때까지 갈아내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입니다. 우리에게 해방감을 주는 토요일, 정확한 시간에 일정한 작업시간을 설정하여 금을 갈아내고 돌아오는 루틴을 3개월 동안 반복합니다. 가치 있는 물건에 금 같은 시간, 특히 황금 같은 주말에 발동하는 작가의 청개구리 심보는 금을 무용한 것으로 만드는 경건한 의례가 됩니다. 어느 것에 가치를 둘 것인지 결정할 때 금과 시간, 둘 다를 허비하는 무력함으로 대답하는 정기훈의 작품은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과 행복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또 다른 작품 <허점의 균형>(2015) 또한 무의미한 반복의 반복이 거듭됩니다. 영상 속 작가는 낚시터에서 쓸 만한 의자를 발견하고 자갈이 깔린 강가에 앉아 쉴 만한 의자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합니다. 식탁의자로 쓰였을 것 같은 수평을 맞추기 위해 의자 다리를 조금씩 잘라내기 시작하는데, 울퉁불퉁한 바닥에 눈대중으로 가늠한 수평이 그대로 유지될 리가 없습니다. 의자 다리를 잘라내고 앉으면 기우뚱거리고 그럼 다시 일어나 의자 다리를 자르고 앉아보고. 균형 맞추는 일을 무수히 반복합니다. 식탁의자는 어느새 목욕의자처럼 납작해졌고, 그래도 균형을 맞출 수 없으며 작가는 편하게 앉아서 쉬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잘라내고 맞추는 과정은 무언가 옳다고 생각하고 내리는 결단 또한 불완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한편으로는 애초에 이상적인 균형은 불가능한 목표였을지언정 결심한 바를 실행해 나가는 일은 많은 것들을 남긴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정기훈의 작품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삶에서 성실하고 열성인 것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느리고 비효율적인 것에 쉽게 가치판단을 내립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길들여진 생태환경에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럴 때 작품을 보러가면 좋습니다. 경쟁과 쟁취, 속도와 효율, 쓸모와 유용. 여기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을 때, 그 불안감과 상실감을 쓸어내리는 작품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이 늘어나기를 기다립니다.
무용한 것에도 의미는 있습니다.
2022년 12월 6일
갑자기 시작된 겨울
눙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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